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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남자만 보면 “당신과 키스하고 싶어요”…수시로 추파 던진 세계적인 경제학자 [히코노미]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56
2024-11-09 07:42:52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5AJCyJGkJl"> <p dmcf-pid="1DovHo5rJh" dmcf-ptype="general">[히코노미-8]“지금 당신과 키스하고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얼마나 행복할까요.”</p> <p dmcf-pid="tGCUbC2XLC" dmcf-ptype="general">편지를 쓰는 내내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불그스름한 연인의 입술이 생각나서였습니다. 다시 만년필을 꽉 쥐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격정적인지를 글로써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strong>침대를 바라보며 연인과 뒹구는 자기 모습을 상상합니다.</strong> 세상 그 어떤 커플보다 격렬히 사랑을 나눌 수 있을 텐데.</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FZSz2S41iI"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폴란드 화가 알렉산더 레서가 1837년 그린 누워있는 남성의 누드. 동성애를 묘사한 작품으로 통한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2863vqsb.jpg" data-org-width="500" dmcf-mid="u4f6e1iBd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2863vqsb.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폴란드 화가 알렉산더 레서가 1837년 그린 누워있는 남성의 누드. 동성애를 묘사한 작품으로 통한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3hEZ0EuSRO" dmcf-ptype="general"> 욕망이 절절히 묻은 편지를 받은 이는 화가 던컨 그랜트. 어쩐지 이름에서 남자의 향기가 묻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수신인도, 발신인은 모두 생물학적 남성. <strong>두 사람이 동성 연인 관계</strong>였기 때문입니다. </div> <p dmcf-pid="05vqVv8tJs" dmcf-ptype="general">편지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남자의 이름은 <strong>존 메이너드 케인스</strong>.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를 설계한 거물 경제학자. 그는 동시에 남성의 육체를 탐닉한 동성연애자였습니다. 수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한 뒤에 이를 일기장에 기록할 정도로 메모광이기도 했었지요.</p> <p dmcf-pid="pGCUbC2XRm" dmcf-ptype="general">성적으로, 학문적으로 자유로웠던 그는 세계 경제사의 물줄기를 바꿨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 그가 만든 세계를 탐색하는 시간입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UWO0qOKGJr"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내 삶은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네.”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33년."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4218abcw.jpg" data-org-width="289" dmcf-mid="7Eb96YxpJ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4218abcw.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내 삶은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네.”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33년.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uLQwCQSgdw" dmcf-ptype="general"> <div> <strong>개방적인 집안의 천재 소년</strong> </div>“케인스, 항상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렴.” </div> <p dmcf-pid="7RVjwVsdLD" dmcf-ptype="general">귀족이었으나, 허례허식과는 거리가 먼 집안. 케인스 가문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국 사회 상류층이면서도 열린 분위기를 추구합니다. <strong>케인스의 아버지 존 내빌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한 경제학자, 어머니 플로렌스 역시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여성 사회운동가였습니다. </strong></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zhEZ0EuSdE"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케인스, 늘 이웃을 살펴보거라. ” 어머니 플로렌스 에이다 케인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5501gdnv.png" data-org-width="312" dmcf-mid="zMcEO6hLd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5501gdnv.pn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케인스, 늘 이웃을 살펴보거라. ” 어머니 플로렌스 에이다 케인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qrayZatsik" dmcf-ptype="general"> 부잣집에서 살면서도 언제나 낮은 곳을 살피던 사람들.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 굶고 있는 부랑자들을 살피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던 부부. 두 사람은 세 자녀에게도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요.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자녀의 생각을 물었고, 그 판단을 존중합니다. </div> <p dmcf-pid="BsjY1j3Inc" dmcf-ptype="general">횃불을 들고 고성을 지르며 끌고 가는 부모가 아니라, <strong>촛불로 자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조용히 밝혀주는 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strong></p> <p dmcf-pid="bVudguj4iA" dmcf-ptype="general">케인스는 부모라는 너른 울타리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았지요. 부모의 지능과 성품을 물려받은 덕분인지 그는 어디를 가나 두각을 드러냅니다. “학교의 그 어떤 소년보다 뛰어나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KFWK8WQ0dj"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공부, 그게 제일 쉽더군.” 자유, 1908년 젊은 시절 20대의 케인스. [사진출처=런던국립초상화박물관]"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6843dyhf.png" data-org-width="700" dmcf-mid="qqEwCQSgn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6843dyhf.pn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공부, 그게 제일 쉽더군.” 자유, 1908년 젊은 시절 20대의 케인스. [사진출처=런던국립초상화박물관]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9PbocbDxRN" dmcf-ptype="general"> <div> <strong>보수적 사회의 진보 기지 케임브리지에 가다</strong> </div>1902년. 케인스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strong>부모가 다녔던 곳, 그래서 오랜 시간 꿈꾸던 곳이었습니다.</strong> 케임브리지는 보수적인 영국 빅토리아 사회에서도 단연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했습니다. 옥스퍼드, 에든버러 등 다른 명문 학교들이 전통을 고수하는 반면, 케임브리지는 격식을 파괴하는 방식의 교육 철학으로 이름났지요. </div> <p dmcf-pid="2efArfOJea" dmcf-ptype="general">학생과 교수가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때론 격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껄끄러운 주제인 종교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할 수 있었던 곳이 케임브리지였지요. <strong>케인스의 성향과 너무나 닮은 조직이었습니다. </strong></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VcihWiHELg"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케인스가 수학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 [사진출처=Andrew Dunn]"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8343eknr.jpg" data-org-width="700" dmcf-mid="By5yZatsi7"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8343eknr.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케인스가 수학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 [사진출처=Andrew Dunn]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f9pRLpaVLo" dmcf-ptype="general"> 케임브리지언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케인스에게 한 제안이 들어옵니다. 예술·문학·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지적 모임에 합류하라는 권유. 화가·소설가·학자 등 구성원 면면도 화려했습니다. </div> <p dmcf-pid="48qnjqkPeL" dmcf-ptype="general">대문호 중 하나인 버지니아 울프나 E.M. 포스터도 이 모임에 속해있었습니다. <strong>‘블룸즈버리 그룹’ </strong>혹은 ‘케임브리지의 사도회’라고 불린 조직이었습니다. 케인스는 고민하지 않고 응했습니다. <strong>수준 높은 지적 대화는 그에게 무엇보다 황홀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strong></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8OAGtA0CLn"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쾌락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지..”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9647oyks.jpg" data-org-width="500" dmcf-mid="b1R4MZdziu"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09647oyks.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쾌락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지..”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6hEZ0EuSRi" dmcf-ptype="general"> 블룸즈버리 그룹이 지적으로만 자유로웠던 건 아닙니다. 모임원들은 성적으로도 시대가 규정한 규범을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strong>케인스는 같은 모임의 화가 던컨 그랜트를 비롯해 뭇 남성들과 뜨거운 사랑을 나눴습니다. </strong>화가 던컨은 또 다른 회원인 작가 리튼 스트레치와도 그렇고 그런 사이였죠. </div> <p dmcf-pid="P3Y96YxpeJ" dmcf-ptype="general">난잡한 동성애 관계로 비칠 수 있겠지만, 블룸즈버리 내에서만큼은 어떤 도덕적 비난이 없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건 인간이 가진 당연한 권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strong>오직 이성과만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는 빅토리아적 관습을 블룸즈버리 그룹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strong></p> <p dmcf-pid="QTmF7mBWRd" dmcf-ptype="general">자유와 욕망. 블룸즈버리 클럽이 지고의 가치로 삼던 것들이었습니다. 케인스는 동성 친구들과의 잠자리를 메모로 남겼을 정도입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xHhuKhVZde"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오늘 피시앤칩스 먹을까. ” 던컨 그랜트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13년."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0960eawg.jpg" data-org-width="463" dmcf-mid="KWOW5NFOeU"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0960eawg.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오늘 피시앤칩스 먹을까. ” 던컨 그랜트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13년. </figcaption> </figure>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yM2ND2meRR"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케인스 우리 이래도 되는걸까. ” 던컨 그랜트의 자화상."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2392azcl.jpg" data-org-width="700" dmcf-mid="97U2PGMUR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2392azcl.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케인스 우리 이래도 되는걸까. ” 던컨 그랜트의 자화상.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W3Y96YxpiM" dmcf-ptype="general"> <div> <strong>공직에 나선 괴짜 케인스</strong> </div>“인도에서 근무해보게.” </div> <p dmcf-pid="YmNW5NFOMx" dmcf-ptype="general">케인스의 뛰어난 경제 지식을 눈여겨보던 곳이 있었습니다. <strong>영국 재무부</strong>였습니다. 1906년 영국 정부는 새내기 경제학자인 그를 고용 후 인도 사무국으로 파견합니다. 식민지 인도의 숱한 경제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의도에서였습니다.</p> <p dmcf-pid="Gz16e1iBLQ" dmcf-ptype="general">자유로운 품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경제지식은 인도 반도에서도 빛났습니다. 케인스는 인도의 경제가 ‘금본위제’에 지나치게 묶여 있다고 진단합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HZSz2S41nP"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케인스가 인도로 온다고?” 케인스가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일한 영 연방 인도사무소."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3695xdgg.jpg" data-org-width="600" dmcf-mid="2ugwCQSgM0"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3695xdgg.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케인스가 인도로 온다고?” 케인스가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일한 영 연방 인도사무소.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Xvrturqyn6" dmcf-ptype="general"> <strong>금본위제는 은행에서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제시하면 금으로 바꿔주는 제도입니다.</strong> 바꿔말하면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그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금과 연결된 국가 화폐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장점. 반면 정부는 금이 있어야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기에 금융정책은 그만큼 발이 묶이게 되는 단점도 상존합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ZuZ4MZdzi8"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지폐는 자고로 금이 보증해야 한다네.” 금본위제를 공약한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 케인스는 금본위제가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은 체제라고 봤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5107chaw.jpg" data-org-width="500" dmcf-mid="VcQITdYci3"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5107chaw.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지폐는 자고로 금이 보증해야 한다네.” 금본위제를 공약한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 케인스는 금본위제가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은 체제라고 봤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5M2ND2men4" dmcf-ptype="general"> 인도경제는 점점 커나가고 있었지만 덩치에 맞는 ‘금’이 존재하지 않았지요. <strong>케인스는 금본위제의 모순을 ‘인도화폐와 재정문제(Indian Currency and Finance)’에 담았습니다.</strong> 케인스가 영국 경제학계의 주목을 받게 한 논문, 아니 작품이었습니다. </div> <div dmcf-pid="1b3xi3o9Lf" dmcf-ptype="general"> <div> <strong>1차대전의 복판에 선 케인스</strong> </div>1914년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은 분주합니다. 유럽이 전쟁의 화마에 휘말려서입니다. <strong>제1차 세계대전</strong>이었습니다. 막대한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재정 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 전쟁에 참전한 영국은 그 어느 때보다 경제지식에 목말랐습니다. 케인스가 런던으로 소환된 배경이었습니다. </div> <p dmcf-pid="tVudguj4LV" dmcf-ptype="general">미국으로부터 차관, 전시 국채 발행 등이 모두 케인스의 두뇌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군인이 총을 들고 전쟁할 때, <strong>케인스는 주판을 튕기며 전장 한 가운데 섰습니다.</strong> 그가 1917년 바스훈장을 받게 된 이유였습니다. 케인스는 이제 영국 정부가 가장 신뢰하는 경제학자가 되었지요.</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FJ8ks8Cne2"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여성도 전쟁에 이바지하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포스터."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6480sgbt.jpg" data-org-width="628" dmcf-mid="f0CBfT6FJ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6480sgbt.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여성도 전쟁에 이바지하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포스터.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3z16e1iBd9" dmcf-ptype="general"> <strong>전쟁의 끝은 그러나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strong>제1차 세계대전은 기어이 새로운 전쟁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승전국인 협상국(영국·러시아·프랑스·일본 등)은 프랑스 베르사유에 모입니다. 패전국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div> <p dmcf-pid="0b3xi3o9JK" dmcf-ptype="general">그들은 생각합니다. <strong>“독일은 언제나 전쟁을 꿈꿔왔다. 이참에 싹을 밟아놔야 한다.”</strong> 특히 보불전쟁(1870년)으로 독일에 의해 수도 파리가 점령당한 치욕을 당했던 프랑스가 극단적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pCkX3kUlib"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사고를 쳤으면 이 정도 돈은 내야지. ”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베르사유 거울의 방에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7903qfzy.jpg" data-org-width="700" dmcf-mid="4YKcm4IiL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7903qfzy.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사고를 쳤으면 이 정도 돈은 내야지. ”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베르사유 거울의 방에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URVjwVsdLB" dmcf-ptype="general">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협상국 리더들에게 강조합니다. <strong>독일의 전쟁배상금은 민간인 피해뿐만 아니라 협상국 군대 손실금을 아울러야 한다고. </strong>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div> <p dmcf-pid="uJ8ks8Cndq" dmcf-ptype="general">독일의 배상 확정금은 330억달러. 케인스가 얘기한 15억달러에 비해 20배나 높은 숫자. 독일이 수십년간 예산을 모두 쏟아부어도 갚을 수 없는 금액. <strong>사실상 정치적 보복에 가까웠던 ‘베르사유 조약’이었습니다.</strong></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7IcHFcphez"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독일 놈들 혼 좀 내야 하지 않겠어?” 왼쪽부터 영국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이탈리아 수상 비토리오 올란도,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9232onoq.jpg" data-org-width="700" dmcf-mid="8BZ3zsbYe1"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19232onoq.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독일 놈들 혼 좀 내야 하지 않겠어?” 왼쪽부터 영국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이탈리아 수상 비토리오 올란도,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zys3zsbYL7" dmcf-ptype="general"> <div> <strong>‘베르사유 조약’에 반기를 든 케인스</strong> </div> <strong>“강요된 평화는 언젠가 폭발한다.”</strong> </div> <p dmcf-pid="qJ8ks8Cnnu" dmcf-ptype="general">영국의 경제 관료 모두가 베르사유 조약에 침묵을 지켰습니다. 한 사람은 예외였습니다.<strong> ‘괴짜 천재’ 케인스였습니다. </strong>그는 베르사유 조약이 몰고 올 파괴의 그림자를 먼저 포착합니다. “독일을 한 세대 동안 노예로 만들고, 수백만 명의 인간의 삶을 저하하고, 온 국민의 행복을 박탈하는 정책을 우리는 혐오해야 합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BqtPdtnbdU"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이 돈을 어떻게 갚으란 말이냐. ” 독일 제국의회 앞에서 조약을 반대하는 시위."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0502btyz.jpg" data-org-width="700" dmcf-mid="6dHturqyL5"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0502btyz.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이 돈을 어떻게 갚으란 말이냐. ” 독일 제국의회 앞에서 조약을 반대하는 시위.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bwgTXg1mRp" dmcf-ptype="general"> 그의 경제학은 오직 숫자와 논리로만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strong>숫자 너머 인간의 눈을 마주할 힘이 있었습니다.</strong> 막대한 배상금으로 인한 독일 국민의 비참함이 먼저 보였기 때문입니다. </div> <p dmcf-pid="KWayZatsL0" dmcf-ptype="general">조국에 실망한 그가 영국 재무부를 떠난 배경이었습니다. 학자로서 케인스는 보다 자유롭게 베르사유 조약을 비판하는 책을 펴냅니다. <strong>명저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였습니다.</strong></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9vLSGLZwe3"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케인스의 명저 ‘평화의 경제적 결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1892huvy.jpg" data-org-width="330" dmcf-mid="P8EsSRyjd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1892huvy.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케인스의 명저 ‘평화의 경제적 결과’.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2UIpBI9HiF" dmcf-ptype="general"> <div> <strong>배상금에 폭발한 독일...나치의 등장</strong> </div>냉철한 ‘비관’은 현실이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배상금을 갚느라 돈을 찍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strong>24시간 가동되는 지폐공장은 전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었지요. </strong>실물 생산에 기반하지 않는 지폐 공급은 엄청난 물가상승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strong>빵 하나를 사기 위해 수레로 지폐를 나르는 비참한 현실.</strong>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VqSz2S41nt"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차라리 벽지로 쓰는 게 이득...” 1923년 독일. [사진출처=Bundesarchiv, Bild 102-00104 Pahl, Georg ]"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3138xbgl.jpg" data-org-width="540" dmcf-mid="QkWpBI9Hd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3138xbgl.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차라리 벽지로 쓰는 게 이득...” 1923년 독일. [사진출처=Bundesarchiv, Bild 102-00104 Pahl, Georg ]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fygTXg1mn1" dmcf-ptype="general"> 시민의 불안을 먹고 성장한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strong>아돌프 히틀러</strong>였습니다. “베르사유 조약 폐기”를 주장하는 그는 독일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strong>자식이 굶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부모들, 노부모를 몰래 내버렸던 자식들, 직업 없이 도시를 떠돌아야 했던 시민들이었습니다</strong>. 막대한 배상으로 경제가 무너진 도시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간 민중들이었습니다. </div> <p dmcf-pid="49WK8WQ0M5" dmcf-ptype="general">거악은 악인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이들의 사무친 원이 만든 증오의 사탑(斜塔)이었습니다. 케인스가 예견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strong>독일이 벌인 2차 세계대전으로 총 5000만명이 사망합니다</strong>. 케인스의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소중한 삶은 계속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89WK8WQ0LZ"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1923년 독일의 500억 마르크 지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4497zsln.jpg" data-org-width="300" dmcf-mid="xGdks8CnMH"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4497zsln.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1923년 독일의 500억 마르크 지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figcaption> </figure>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6qSz2S41eX"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베르사유 조약은 파기될 것이오. ” 아돌프 히틀러,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5763tuam.jpg" data-org-width="700" dmcf-mid="ysQaE9rRe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5763tuam.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베르사유 조약은 파기될 것이오. ” 아돌프 히틀러,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PaKgkKwMRH" dmcf-ptype="general"> <div> <strong>대공황, 케인스를 소환하다</strong> </div>잊힌 이름 케인스. 그는 러시아 여성 리비아 로포코바와 결혼해 안정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소환된 건 1930년대였습니다.<strong>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 공황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strong>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이 급증하는 악순환. 영국 재무부는 그의 지성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Qzl79lf5nG"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여보, 국가가 다시 나를 찾는구려.” 케인스와 아내 리디아 로포코바."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7036clqa.jpg" data-org-width="480" dmcf-mid="WLI1UwzTM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7036clqa.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여보, 국가가 다시 나를 찾는구려.” 케인스와 아내 리디아 로포코바.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xE8ks8CneY" dmcf-ptype="general"> 케인스는 다시 한번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습니다.<strong>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주문하면서였습니다.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시민을 직접 고용해 그들에게 돈을 쥐어주라는 제언. 구매력을 갖춘 시민들이 있어야 소비가 이뤄지고 다시 기업이 산다는 명쾌한 해석이었습니다.</strong> </div> <p dmcf-pid="y7huKhVZdW" dmcf-ptype="general">고용-소비-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고용’의 첫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전혀 없던 내용이었지요.</p> <p dmcf-pid="WgbocbDxdy" dmcf-ptype="general">‘시장이 장기적 균형을 맞출 것’이라 반박하는 경제학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strong>“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 죽는다).” </strong>‘장기균형’을 기다리는 사이 시민들의 삶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될 것이라는 비판이었습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YJudguj4JT"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밥, 아니 빵 좀 주시오. ” 대공황 시기 마피아 알 카포네가 연 구호식당 밖에 줄을 선 시민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8342ckbr.jpg" data-org-width="700" dmcf-mid="YWREO6hLM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8342ckbr.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밥, 아니 빵 좀 주시오. ” 대공황 시기 마피아 알 카포네가 연 구호식당 밖에 줄을 선 시민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G4XfxXe7Lv" dmcf-ptype="general"> 1936년 그가 발표한 ‘고용, 이자 그리고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은 전 세계 지도자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었지요. ‘케인스 혁명’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추진한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strong> ‘뉴딜’의 이론적 근거 역시 케인스로부터 나왔습니다.</strong>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H1D5pD7vnS"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이제 정부가 시민을 고용하겠소. ” 화가 윌리엄 그로퍼의 댐 건설. 1939년 작품."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9629gzra.jpg" data-org-width="700" dmcf-mid="GbS0qOKGR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29629gzra.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이제 정부가 시민을 고용하겠소. ” 화가 윌리엄 그로퍼의 댐 건설. 1939년 작품.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X0s3zsbYJl" dmcf-ptype="general"> <div> <strong>케인스는 죽었지만...그의 유산은 남았다</strong> </div>“나의 유일한 후회는, 더 많은 샴페인을 마시지 못한 것이네.” </div> <p dmcf-pid="ZZkX3kUldh" dmcf-ptype="general">1945년 8월, 포성은 멈췄으나 여전히 할 일은 많았습니다. 케인스는 1차 대전의 악몽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끔, 전후 경제 체제를 구상합니다. 경제의 불균형이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중재기관을 제안한 것도 케인스였습니다. <strong>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설립이었습니다. </strong></p> <p dmcf-pid="5qSz2S41dC" dmcf-ptype="general">미국과 유럽을 수시로 오가는 삶. 과로가 겹친 탓인지, 그의 건강은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걱정에 그는 “샴페인이나 좀 더 마실걸”이라면서 유머를 잃지 않았지요.</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1QtPdtnbiI"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니들이 경제를 알아?” 헤리 덱스터 화이트 미국 재무장관과 대화를 나누는 케인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30891oaxl.jpg" data-org-width="500" dmcf-mid="HVY6e1iBL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30891oaxl.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니들이 경제를 알아?” 헤리 덱스터 화이트 미국 재무장관과 대화를 나누는 케인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t5EZ0EuSJO" dmcf-ptype="general"> 1946년 4월 21일 그가 눈을 감았습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추도식이 치러집니다. 국가 영웅급 장례식이었습니다. 같은 날 미국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도 영결식이 열립니다. <strong>미국과 영국 양국에서 존경받는 몇 안 되는 학자가 바로 케인스였던 셈입니다. </strong> </div> <p dmcf-pid="F3mF7mBWns" dmcf-ptype="general">그의 가장 격렬한 비판자였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말했습니다.<strong>“그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세상은 훨씬 가난했을 것입니다.”</strong></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3nziNzc6Jm"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완전한 시장, 보이지 않는 손의 전능함은 인간의 꿈에서만 존재할지도 몰라.” 상념에 잠긴 케인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32343yvgp.jpg" data-org-width="700" dmcf-mid="XpW8R5Jqi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32343yvgp.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완전한 시장, 보이지 않는 손의 전능함은 인간의 꿈에서만 존재할지도 몰라.” 상념에 잠긴 케인스.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0CdITdYcLr" dmcf-ptype="general"> 케인스의 유해는 고향 땅에 묻혀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 경제체제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1980년대 불어닥친 자유주의 바람으로 케인스주의를 향한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케인스주의는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굳건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건 유토피아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div> <p dmcf-pid="pXcHFcphMw" dmcf-ptype="general">모든 국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은 <strong>케인스주의라는 토지 위에 경제정책을 세웠습니다. </strong>지적으로도 성적으로도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한 사내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입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dmcf-pid="UAVjwVsdRD"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여보, 나의 사상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케인스와 아내 리디아 로포코바를 묘사한 그림. [사진출처=런던국립초상화박물관]"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33671blwo.jpg" data-org-width="700" dmcf-mid="ZeY6e1iBn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1/09/mk/20241109071233671blwo.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여보, 나의 사상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케인스와 아내 리디아 로포코바를 묘사한 그림. [사진출처=런던국립초상화박물관] </figcaption> </figure> <div dmcf-pid="uk4cm4IinE" dmcf-ptype="general"> <네줄요약> </div> <p dmcf-pid="7mxrhxvadk" dmcf-ptype="general">ㅇ정부의 적극적 공공정책으로 경제살리기를 주문한 경제학자 케인스는 성적으로도 자유로운 동성애자였다.</p> <p dmcf-pid="z8Z4MZdzLc" dmcf-ptype="general">ㅇ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는 동성애를 옹호한 블룸즈버리 클럽 회원이기도 했다.</p> <p dmcf-pid="qZkX3kUlRA" dmcf-ptype="general">ㅇ지적으로도 자유로웠던 그는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다양한 경제정책을 주문했고, 베르사유 조약이 히틀러와 같은 악마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p> <p dmcf-pid="B9WK8WQ0dj" dmcf-ptype="general">ㅇ세계경제는 여전히 그의 이론에 기반해 있다.</p> <p dmcf-pid="b9WK8WQ0eN" dmcf-ptype="general"><참고문헌></p> <p dmcf-pid="KUIpBI9Hea" dmcf-ptype="general">ㅇ존 메이너드 케인스, 평화의 경제적 결과, 부글북스, 2016년</p> <p dmcf-pid="9k4cm4Iieg" dmcf-ptype="general">ㅇ니컬러스 웝숏, 케인스 하이에크-세계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부키, 2014년</p> <div dmcf-pid="2658R5Jqeo" dmcf-ptype="general"> ‘경제’는 맛보기에 어려운 식재료입니다. 채권, 이자, 화폐라는 단어만 들어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맛있게 즐기려면 ‘역사’라는 양념이 필요합니다. 역사(히스토리)와 경제(이코노미)를 결합한 연재물 ‘히코노미’는 먹음직한 요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합니다. 격주로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div>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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