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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여제의 쉼표…패배 쓴맛 잊고 그녀의 바둑 두길

온카뱅크관리자

2024-07-03 00:01:00

<div class="ab_photo photo_center " > <div class="image">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5/2024/07/03/0003370835_001_20240703000236421.jpg" alt="" />한국 바둑의 쌍두마차 중 한 명으로 불리다 최근 슬럼프에 빠진 최정 9단. [사진 한국기원] </div> </div> 바둑여제 최정 9단의 잇따른 패배 소식에 울적해져 한강의 선유도를 찾았다. 고즈넉한 선유도는 오래 머물 수 있어서 좋다. 어슬렁거리며 수련을 본다. 안개비와 수목 속에서 물 위에 핀 붉은 수련의 모습은 더욱 처연하고 쓸쓸하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최정의 패배는 진정 분한 일이다. 최정이 왜 졌는지 연구도 하기 싫고 분석도 하기 싫다. 최정이 졌다는 사실이 그냥 슬픔을 자아낸다. 최정은 신진서 9단과 함께 한국바둑을 이끌어 온 쌍두마차. 바둑채널에서 시청률 최고인 단골 손님. 남자 기사들과 세계 정상을 놓고 다툰 유일한 여자 기사. 구쯔하오, 양딩신, 변상일 등 최강의 남자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그는 삼성화재배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적의 순간들, 세계 최초의 순간들. 지난주 최정은 중국의 황룡사배에서 1승 6패 했다. 8명 중 8위. 최정은 무심히 칼 앞에 몸을 던졌고 수많은 칼이 세상을 평정했던 여왕의 몸을 마구 찔렀다. 여왕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뭔가 항의하듯, 질문을 던지듯 패배를 받아들였다. 비 내리는 선유도는 잿빛이다. 이곳은 100년 전만 해도 높이가 50ｍ 조금 넘는 선유봉이었고 인근에는 배 만드는 장인, 어부, 여의도목장 양치기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 뒤에 정수장이 들어섰고 그 정수장 터에 옛 모습을 잘 살린 선유도 공원이 꾸며졌다. 세상은 자꾸 변한다. 한강만 해도 참 많이 변했다. 내가 선유도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기도(碁島)’를 보고 싶어서다. 10년쯤 전이던가. 선유도에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 중 한성부 지도인 경조오부도를 봤다. 그곳 한쪽에서 ‘碁島’ 라는 두 글자가 눈에 쑥 들어왔다. 바둑섬이다! 반가웠다. 바둑섬이 지금의 반포 서래섬 앞쪽에 있었다. 그 뒤로 이곳에 와서 ‘碁島’라는 두 글자를 확인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바둑섬은 이름 자체로 가슴을 울린다. 지금은 사라졌기에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어떤 섬이었을까. 바둑 두며 시를 읊던 풍류의 장소였을까. 이웃 흑석동(黑石洞)이란 이름을 생각하면 바둑돌을 만들던 곳이었을까. 관청에서 관원들이 근무 중에 바둑을 두다 적발되면 이곳으로 하루 유배를 보냈다는 얘기가 유력하다. 그렇지만 너무 이상한 벌칙이고 너무 이상한 유배다. 유배지를 만들 정도로 근무 중 바둑 두는 사람이 많았을까. 조선 시대에 바둑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유행했던 것일까. 아까운 바둑섬, 사라진 바둑섬을 생각하다가 엉뚱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바둑섬이 지금도 존재한다면 최정이 가서 푹 쉴 수 있을 텐데. 푹 쉬면 좋을 텐데. 최정은 올해 바둑리그와 여자바둑리그 출전을 모두 포기했다. 바둑리그는 시청률 때문에 야간대국을 하는데 자정을 넘기기도 한다. 한국기원 홍보팀의 장은애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정 9단은 잠이 많아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거든요. 야간대국이 몹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최정 9단은) 바둑을 너무 사랑해요. 뭔가 요청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어요. 그래도 조금 지쳤나 봐요.” 쌍두마차인 최정과 신진서는 그간 얼마나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던가. 하지만 지난주 중국에서 신진서는 난커배 결승에 올랐고 최정은 황룡사배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두 사람 다 대회 전엔 우승후보 1순위였고 그 강도는 최정 쪽이 더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최정 9단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 전에 자신의 바둑인생을 이모저모 생각해보고 있다는 것은 말을 안 해도 느낄 수 있다. 승부란 무엇인가. 바둑은 무엇인가. 하지만 모든 것을 근원적으로 접근하면 세상사는 더욱 묘연해진다. 힘든 시기다. 수 없는 우승과 패배 속에서도 그는 일희일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힘든 시기다. 최정의 바둑인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금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사색을 통해 최정 9단이 자신의 길을 찾아내기를 희망하고 응원한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