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보증업체
스포츠중계
스포츠분석
먹튀사이트
지식/노하우
판매의뢰
업체홍보/구인
뉴스
포토
포인트
보증카지노
보증토토
보증홀덤
스포츠 중계
기타
축구
야구
농구
배구
하키
미식축구
카지노 먹튀
토토 먹튀
먹튀제보
카지노 노하우
토토 노하우
홀덤 노하우
기타 지식/노하우
유용한 사이트
제작판매
제작의뢰
게임
구인
구직
총판
제작업체홍보
실시간뉴스
스포츠뉴스
연예뉴스
IT뉴스
자유게시판
연예인
섹시bj
안구정화
출석하기
포인트 랭킹
포인트 마켓
로그인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정보찾기
뉴스
더보기
[연예뉴스]
제로베이스원, K팝의 여름 아이콘[민경훈의 줌인]
N
[연예뉴스]
차가원 회장, '미정산금 갈등'에 "산이 억지주장..비상식 사례 바꿀 것"[전문]
N
[연예뉴스]
'41세' 기은세, 과감한 가슴 라인 수영복입고 "나 귀엽대"
N
[연예뉴스]
빅플래닛 차가원 회장 "아티스트 끝까지 보호·활동 전폭 지지할 것" [공식](전문)
N
[연예뉴스]
[공식] 빅플래닛 회장 "산이 건달 루머→MC몽 인신공격, 아티스트 끝까지 보호할것"(전문)
N
목록
글쓰기
[실시간뉴스]돈 많은 죄... 평생 모은 것 다 주고도 남편은 살리지 못했다 [박만순의 기억전쟁2]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13
2024-04-29 20:27:53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바다로 이송된 박후근·김순심 부부... 다섯 집안 몰살된 임자면 수도리</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q210UGmesv"> <p dmcf-pid="Bx7b93vaES" dmcf-ptype="general">[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p> <p dmcf-pid="bMzK20TNml" dmcf-ptype="general">"남편 살리고 싶거든 숨겨둔 돈 내놓으시오."</p> <p dmcf-pid="KRq9Vpyjmh" dmcf-ptype="general">그때까지 분주소원들의 갖은 협박에도 꿋꿋이 버티던 김순심(1888년생)은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무릎이 꺾였다. 그렇잖아도 남편이 며칠 전 이들 일행에 의해 자은면 유각리의 자은분주소 옆 남진창고에 갇힌 터였다.</p> <div dmcf-pid="9i946zHEEC" dmcf-ptype="general"> <strong>남편의 죄가 무엇일까</strong> <br>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dmcf-pid="2n28PqXDsI"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4/29/ohmynews/20240429202102214cqbo.jpg" data-org-width="1280" dmcf-mid="umQeJf0CE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4/29/ohmynews/20240429202102214cqbo.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지방좌익에 의해 학살된 김순심(좌) 박후근 부부</td> </tr> <tr> <td align="left">ⓒ 박만순</td> </tr> </tbody> </table> <div dmcf-pid="VwdLgQzTIO" dmcf-ptype="general"> <br>남편이 분주소에 연행될 때 만해도, '특별히 죄지은 게 없으니 금방 풀려나겠지'라고 마음을 놓았었다. 하지만 한 번 붙들려 간 남편은 소식이 없었다. 밥을 해 아침저녁으로 창고 앞을 서성였으나 창고 앞을 지키는 청년들은 남편 면회를 시켜 주지 않았다. </div> <p dmcf-pid="frJoaxqyIs" dmcf-ptype="general">남편이 붙들려 간 이후 김순심의 주름살은 늘어만 갔다. '남편의 죄가 무엇일까?' 남들에게 특별히 해를 끼친 것 없이 평생을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 재산을 일군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나고 인공시대(인민공화국 시대)가 열리면서 박후근 집안은 반동 집안으로 규정되었다. 결국 남편의 죄는 돈이 많은 것이었다.</p> <p dmcf-pid="4migNMBWIm" dmcf-ptype="general">그러던 차에 인민위원회 사람들의 '남편을 살리려거든 돈을 내놔라'라는 말에 그제야 자신의 잘못도 생각났다. 자신의 잘못은 돈을 내놓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심정으로 김순심은 마당 귀퉁이의 간짱을 묻어둔 곳으로 갔다. 간짱은 생선을 절여놓는 탱크로 그녀의 마당 귀퉁이에는 가로세로 각각 5m×3m, 5m×10m 크기의 것이 있었다. 각각 민어와 조기를 절여놓은 간짱의 뚜껑을 열어 갑바를 꺼냈다.</p> <p dmcf-pid="8kMJn8Ulrr" dmcf-ptype="general"><strong>물에 젖은 돈다발</strong></p> <p dmcf-pid="6ERiL6uSDw" dmcf-ptype="general">갑바를 간짱(탱크)에 숨기느라 돌을 매달았다. 그래서 일전에 분주소 사람들이 그곳을 열어 봤을 때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돌을 묶은 끈을 풀고 갑바를 풀어헤치자 물먹은 현금다발이 나왔다. "와"하는 소리가 터졌다.</p> <p dmcf-pid="PDenoP7vmD" dmcf-ptype="general">간짱은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만들어 물이 새지 않았지만 현금다발을 감싼 갑바는 물이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물에 젖은 돈다발을 말리는 게 우선이었다.</p> <p dmcf-pid="QJKf87GkwE" dmcf-ptype="general">조심해서 돈다발을 사흘포로 옮겨 펼치기 시작했다.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고 약간만 힘을 주어도 지폐가 찢어졌다. "아이고 아까워라"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돈이 거의 말라갈 때쯤 강풍이 불었다.</p> <p dmcf-pid="xi946zHErk" dmcf-ptype="general">지폐가 사방으로 날렸다. 청년들이 사방으로 허둥댔다. 그러는 찰나에 허둥대는 청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근처에 있던 개가 지폐를 물고 뛰었다. "야, 이 개XX야. 거기 서" 전남 무안군(현재의 신안군) 자은면 고장리에서 지폐를 물고 달리는 개와 그 개를 뒤쫓는 촌극이 벌어진 것은 1950년 9월 하순이었다.</p> <p dmcf-pid="yZshSEdzIc" dmcf-ptype="general">김순심이 평생을 모은 돈을 고스란히 내놓았지만 남편이 석방되기는 고사하고 김순심 역시 분주소로 연행됐다. 남편이 잡혀간 지 보름만인 1950년 9월 30일경이었다.</p> <div dmcf-pid="WtCvyrnbOA" dmcf-ptype="general"> <strong>그가 반동분자로 보인 이유</strong> <br>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dmcf-pid="YFhTWmLKEj"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4/29/ohmynews/20240429202103648hipv.jpg" data-org-width="600" dmcf-mid="73Kf87GkI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4/29/ohmynews/20240429202103648hipv.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김순심 박후근의 아들 박일만이 한국전쟁 때 전사해 수여한 국가유공자증</td> </tr> <tr> <td align="left">ⓒ 박만순</td> </tr> </tbody> </table> <div dmcf-pid="Gcxdi4phEN" dmcf-ptype="general"> <br>'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남진창고 문이 열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같이 구금되어 있던 이들의 땀내와 오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여보" "..." "일만이 아버지" "당신이 웬일이오?" 가슴 시린 상봉을 할 시간도 없었다. 창고 밖에서 청년들의 고함이 터졌다. </div> <p dmcf-pid="HkMJn8Ulra" dmcf-ptype="general">박후근·김순심 부부를 비롯해 창고에 갇혔던 이들은 창고 앞바다로 이송되었다. 갖은 구타와 고문을 당한 이들은 반쯤 죽은 목숨이었지만 아직은 숨이 붙어 있었다. 청년들은 이들의 가슴에 돌을 메달았다. 자은분주소원들과 지방좌익 청년들이었다.<br>청년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챘지만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저항하거나 몸부림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후 이들을 실은 돛단배가 노를 저었다. 30분이나 지났을까? 되돌아온 돛단배에 가슴에 돌을 메달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p> <p dmcf-pid="XERiL6uSDg" dmcf-ptype="general">이날 물고기 밥이 된 박후근(1888년생)은 젓갈 도매업과 선구점(배에서 쓰는 노, 닻, 키 따위의 기구를 파는 가게) 및 객주 운영 등으로 많은 재산을 축적한 자은면의 대표적인 부자이자 지주였다.</p> <p dmcf-pid="ZOLNAeKGIo" dmcf-ptype="general">좌익들의 눈에 박후근이 자은면의 대표적인 반동으로 비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재판이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 더군다나 지주와 자산가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전쟁범죄이다. 그런데 사실 박후근·김순심 부부가 남진창고 앞바다에서 물고기 밥이 된 것은 부자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 박일만이 무안군청 학무계에 근무한 공무원이라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는 공무원이면서 대한청년단 활동을 했고, 6.25가 나자 청년방위대로 전장터에 자원입대했다가 그해 무안군에서 전사했다.</p> <p dmcf-pid="5Iojcd9HrL" dmcf-ptype="general">박일만 부모를 죽인 이들이 박일만이가 전쟁터에 참전한 것은 몰랐을 것이다. 다만 자식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죽임을 당하는 광기의 시대였다.</p> <p dmcf-pid="1CgAkJ2Xrn" dmcf-ptype="general"><strong>지방좌익 K씨 청년들의 학살</strong></p> <p dmcf-pid="t6pzB1hLmi" dmcf-ptype="general">"어떤 놈들이 몰래 나무를 베고 있다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유지에서 땔감으로 솔가지나 죽은 나무를 주워가는 정도는 허용됐지만 톱이나 도끼를 이용해 나무를 베는 것은 도적행위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p> <p dmcf-pid="FPUqbtlosJ" dmcf-ptype="general">그런데 문중산에서 누군가 도벌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민수(가명)는 급하게 집안 청년 5~6명을 끌어모았다. 수도리에서 문중산이 있는 깐치미는 '엎어지면 코 닿을 격'의 거리였다. 단순 도벌범 인줄 알고 지게 작대기조차 준비하지 못한 청년들은 깐치미까지 한달음에 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주변에서 도끼 소리가 난다는 점이었다.</p> <p dmcf-pid="3QuBKFSgEd" dmcf-ptype="general">"저기 바닷가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네"라는 소리에 청년들은 급경사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의 맨 뒤에 있던 이가 펄쩍 뛰어 평지에 발을 내딛을 때였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청년이 쓰러졌다.</p> <p dmcf-pid="0Rq9Vpyjme" dmcf-ptype="general">장작개비와 두개골이 부딪치는 소리에 놀란 청년들이 뒤를 돌아볼 때였다. '와'하는 함성과 함께 나타난 약 10명의 청년들이 장작개비와 몽둥이, 죽창, 도끼, 곡괭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무방비의 양성이씨(陽城李氏) 청년들은 순식간에 땅에 코를 박았다.</p> <p dmcf-pid="peB2fUWAIR" dmcf-ptype="general">쓰러진 이씨 청년들을 순식간에 줄로 묶어 인근 가옥에 가둔 이들은 같은 마을에 살던 K씨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이씨 청년들을 몽둥이찜질과 죽창, 도끼로 피칠갑을 만든 때는 1950년 10월 4일이었다.</p> <p dmcf-pid="UdbV4uYcwM" dmcf-ptype="general">도벌범을 잡는다고 뛰쳐나간 청년들이 함흥차사라는 소리에 전남 무안군(현재의 신안군) 임자면 수도리 양성이씨 집안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이번에는 10명의 청장년들이 같이 움직였다.</p> <p dmcf-pid="uOLNAeKGIx" dmcf-ptype="general">이번에도 깐치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닷가 쪽에서 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가 났다. 앞선 이들이 바닷가의 급경사를 내려갈 때였다. '딱' 소리와 이어 '악' 소리가 났다. "뭔 소리여?"하면서 뒤이어 오던 이들의 운명도 앞선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p> <p dmcf-pid="7Iojcd9HmQ" dmcf-ptype="general">수도리에서 깐치미로 도벌범(?)을 잡으러 간 2차 원정대는 K씨 청년들에 의해 순식간에 피칠갑을 당했다.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죽창으로 가슴을 찔리고 도끼로 머리를 가격당한 이들은 반송장이나 다름없었다.</p> <p dmcf-pid="zykrsaP3rP" dmcf-ptype="general">2차로 간 청장년들까지 감감무소식이자 수도리 마을은 난리가 났다. 1~2차로 나간 청장년 열댓 명이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3차 원정대는 아기와 어린이를 제외한 남성 5~6명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지게 작대기와 괭이가 들려 있었다.</p> <p dmcf-pid="qWEmONQ0s6" dmcf-ptype="general">하지만 허약한 무장을 한 3차 원정대도 K씨 청년들의 유인작전에 휘말려 순식간에 초주검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p> <div dmcf-pid="BYDsIjxpI8" dmcf-ptype="general"> <strong>다섯 집안의 죽음</strong> <br>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dmcf-pid="bERiL6uSE4"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404/29/ohmynews/20240429202104990inbv.jpg" data-org-width="1280" dmcf-mid="zsmClke7r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4/29/ohmynews/20240429202104990inbv.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수도리 양성이씨들이 멸족당한 깐치미</td> </tr> <tr> <td align="left">ⓒ 박만순</td> </tr> </tbody> </table> <div dmcf-pid="KDenoP7vDf" dmcf-ptype="general"> <br>다음날인 1950년 10월 5일 할머니와 젊은 여성들이 아기들을 업고 깐치미로 향했다. '이씨 남정네들이 전부 깐치미에서 죽었다'더라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div> <p dmcf-pid="9wdLgQzTwV" dmcf-ptype="general">건장한 남성들도 유인작전에 걸려들어 죽거나 반죽음이 된 마당에 여성들의 최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p> <p dmcf-pid="2g4QMK1ms2" dmcf-ptype="general">이것으로 K씨들의 피의 제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피에 굶주린 이들은 양성이씨가 모여 사는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는 남자라고는 아기와 어린이, 노인밖에 없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보이는 생명체를 향해 무조건 죽창을 내질렀다. 입이 얼어붙은 여성과 노인들은 광기어린 청년들의 죽창과 도끼질에 혼이 나가 있었다.</p> <p dmcf-pid="Va8xR9tss9" dmcf-ptype="general">10월 5~6일에는 임자면 수도리 양성이씨 집안사람 68명이 10명 단위로 배에 실렸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사람이 반,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반이었지만 이들의 가슴에는 한결같이 커다란 돌이 메달려 있었다.</p> <p dmcf-pid="fN6Me2FOmK" dmcf-ptype="general">잠시 후 바다에서는 '풍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68명의 목숨이 물고기 밥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때 다섯 집안이 몰살당했다.</p> <p dmcf-pid="4fFU7XOJsb" dmcf-ptype="general">이사원, 이재순, 이황수, 이돌남, 이창무 가족이 그들이다. 2세부터 8세까지의 영유아가 9명이나 된다. 심지어 이재순(1895년생)의 손자 이민형은 세상에 나온 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양력으로 1950년 4월 2일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전남 신안군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2023)</p> <p dmcf-pid="843uzZIirB" dmcf-ptype="general">그렇다면 왜 같은 마을에 살던 K씨 청년들은 이씨 집안을 멸족시켰을까? 임자면의 작은 섬, 수도에서 양성이씨와 K씨의 대립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다. 당시 이씨 집안과 K씨 집안이 선산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p> <p dmcf-pid="6807q5Cnmq" dmcf-ptype="general">이씨 집안 세가 커지고 재산이 늘어 수도의 전답 약 2/3가 이씨 집안 소유가 되었다. 이씨 집안이 K씨 집안이 소작하던 지도 백련동 N씨 집안 토지를 사들인 일을 계기로 두 집안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다.</p> <p dmcf-pid="PSjEwL41Dz" dmcf-ptype="general">이 갈등은 한국전쟁기까지 이어졌고, 결국 인공시기 지방좌익이었던 K씨 청장년들이 양성이씨에 대해 광기어린 피의 제전을 벌인 것이다.</p> <p dmcf-pid="QvADro8tI7" dmcf-ptype="general"><strong>보상은 아직...</strong></p> <p dmcf-pid="x7WX5lA8mu" dmcf-ptype="general">사건이 발발한 지 73년 만에 진실화해위회는 임자면 수도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68명의 억울한 죽음을 진실규명 결정한 후 정부와 지자체에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 추모사업 추진,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적기록 정정, 역사기록 반영, 평화교육 실시'를 권고했다.</p> <p dmcf-pid="ykMJn8UlwU" dmcf-ptype="general">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조치는 일언반구 없다. 물론 이 문제는 국회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희생사건 배보상특별법'이 제정되어야만 풀 수 있다. 다만, 국민보도연맹사건, 형무소재소자 사건, 군경에 의한 사건 등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희생 사건의 경우 민사소송을 통해 배·보상이 이루어졌다.</p> <p dmcf-pid="WERiL6uSDp" dmcf-ptype="general">수도사건의 유족 이호기(1958년생. 신안군 임자면)는 "좌·우에 의한 사건 구분 없이 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사실 '전쟁기간이라 하더라도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는 점에서 이호기의 주장은 설득력이 높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댓글등록
댓글 총
0
개
맨위로
이번주
포인트
랭킹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
1
4,000
상품권
2
3,000
상품권
3
2,000
상품권
업체홍보/구인
더보기
[제작업체홍보]
h5웹미니게임개발제작 라이브스코어제작 커뮤니티제작 스포츠솔루션제작임대
[제작업체홍보]
h5웹미니게임개발제작 포유소프트 텔레그램 @fusoft001 스포츠 토토 솔루션제작임대분양
[제작업체홍보]
h5웹미니게임개발제작 포유소프트 텔레그램 @fusoft001 스포츠 토토 솔루션제작임대분양
[제작업체홍보]
h5웹미니게임개발제작 라이브스코어제작 커뮤니티제작 스포츠솔루션제작임대
[구인]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자 모집
지식/노하우
더보기
[기타 지식/노하우]
먹튀사이트의 전형적인 특징
N
[기타 지식/노하우]
진화하는 먹튀 수법에도 안전한 놀이터
N
[카지노 노하우]
온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노하우
N
[기타 지식/노하우]
픽스터들이 가족방을 운영하는 이유
N
[기타 지식/노하우]
놀이터에서 말하는 '졸업'의 의미
N
판매의뢰
더보기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포토
더보기
N
N
N
N
N
N
채팅하기